<군주론>(君主論, Il Principe)은 이탈리아의 외교관이자 정치철학자인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저술한 16세기 정치학 저술이다.
<군주론>은 정치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마키아벨리를 유명하게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저서이다. 마키아벨리는 남의 역량과 힘이 아닌, 자신의 역량과 힘으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필요에 의해서 비도덕적인 정치 행동을 할 때도 있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최초로 정치와 도덕을 분리시키려 한 시도로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년 5월 3일 ~ 1527년 6월 21일),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외교관, 정치철학자.
이탈리아의 도시국가 피렌체에서 베르나르도 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494년에 메디치 가문이 몰락할 무렵 공직에 입신하여 피렌체 공화국 10인 위원회의 서기장이 되었으며, 외교 사절로서 신성 로마 제국 등 여러 외국 군주에게 사절로 파견되면서 독자적인 정치적 견해를 구축하였다. 그는 1498년부터 1512년까지 피렌체 공화국 제2서기국의 서기장을 역임했다.
외교와 군사 방면에서 크게 활약하였으나, 1512년 스페인의 침공으로 피렌체 공화정이 무너지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의 지배권을 회복하면서 공직에서 추방되어 독서와 글을 쓰며 지냈다. 이때 그는 메디치가의 군주에게 바치는 〈군주론〉을 저술한 것으로 여겨진다. 1513년 발표한 이 <군주론>에서 위대한 군주와 강한 군대, 풍부한 재정이 국가를 번영하게 하는 것이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군주는 어떠한 수단을 취하더라도 허용되어야 하며, 국가의 행동에는 종교 및 도덕의 요소를 첨가할 것이 아니라는 마키아벨리즘을 발표하였다. 이러한 그의 정치사상은 일찍부터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1513년에는 메디치 군주정에 대한 반란 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투옥되어 고문을 당했다. 같은 해 3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출신에 조반니 추기경이 교황(레오 10세)로 선출되자 교황특사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코시모 루첼라이라는 공화주의파의 주도하에 이뤄진 '오리첼라리 정원의 모임'으로 알려진 피렌체 공화주의자의 모임에 참여하게 된다. 그의 로마사 논고는 바로 코시모 루첼라이에게 헌정되었다. 이 저작은 피렌체 공화주의의 가장 핵심적인 저작이며 로마 공화정을 비롯한 공화국들의 긍정적 역량을 최대한 조명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1527년 사망하였다.